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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의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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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
· 최초 등록: 2025.09.14 · 최근 연재: 2025-10-26
읽기 시간 예측: 약 9.15분

52화 - #2


좌의정을 제외한 삼사육조의 대신들이 모두 빈청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가장 해맑은 얼굴로 웃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유상옥 대감이었다.

그는 모두를 둘러보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좌상대감의 뜻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대신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많은 일들을, 안양군과 의논하여 진행하라십니다."

그의 말에 병판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무슨 해괴망측한 말입니까? 대군과 무슨 일을 의논하라는 말입니까?"

유상옥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병판을 응시했다.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요. 하나하나 짚어드려야 아십니까?"

유상옥의 말에 병판의 얼굴이 붉어지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을 그리 하시는가?"

유상옥은 그런 병판을 보며 콧방귀를 뀌어 보일 뿐이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작금에 세자 저하께옵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어찌했었는지를 말입니다. 버젓이 사교도 사람을 데려다가 곁에 두시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깥으로 나돌고 계십니다. 이게, 이게... 이 나라, 조선의 국본이 할 일입니까? 좌포청과 우포청은, 뭣하러 있단 말입니까?"

유상옥이 목소리를 높이며, 탁상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이야기하니, 다들 서로 눈치만 볼뿐이었다.

"사교도 무리와 어울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국본의 자격이 없다 할 것입니다."

유상옥의 말에 우의정이 놀라 말했다.

"어허, 이보시게, 이판. 그 심정은 알겠으나, 말을 가려하시게."

"뭐... 이것이 제 혼자만의 생각이겠습니까? 어젯밤에... 좌상대감을 만나 이일에대해 확답을 받고 왔습니다."

그의 말에 다들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이 되어 유상옥을 바라보았다.

"좌상 대감을 만나고 왔다구요? 좌상 대감께서 뭐라 하십니까?"

"좌상대감께서는... 폐세자를 원하십니다."

그의 말에 다들 표정이 아연실색해졌다.

"그, 그 무슨 말이오? 아니 대체 무슨 명분으로 폐세자를 운운한단 말입니까?"

병판이 놀라 되물으니, 유상옥이 그런 병판을 보며 말했다.

"어허... 병판 대감, 어찌 이리 소심해 지셨습니까? 그 끝 모르던 사내대장부의 기개는 다 어디 간 것입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명분은... 이미 충분합니다."

우의정이 조심스럽게 유상옥에게 되물었다.

"정녕... 그것이 좌상대감의 뜻입니까?"

유상옥이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턱수염을 매만졌다.

"허험, 뭐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앞으로 쾌청하실 때 까지는 이 사람을 통해 의사를 전달한다 하였으니..."

유상옥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하나의 서찰이었고, 그것을 꺼내놓은 유상옥이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흠, 이것은 좌상 대감의 뜻이 적힌 것입니다."

우의정이 얼른 서찰을 펼쳐 안에 내용을 확인해 보고는 굳은 표정으로 유상옥 대감을 바라보았다.

"알았습니다. 좌상대감의 뜻이 그리하다면, 따라야지요."

병판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서찰을 확인해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유상옥을 바라보았다.

"좌상의 뜻이라면 따를 것이나, 이는 실로 큰 위험이 따르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상전하 께옵서도 이 일만큼은 물러서지 않으실 겝니다."

유상옥은 피식 실소를 잠시 지어 보이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와중에 유상옥이 문을 열며 말했다.

"들어오시지요."

그러자 그 안으로 한 젊은 남자가 들어섰고, 그를 알아본 빈청 안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선 이는 다름 아닌 안영군이었다.

안영군은 어딘지 모르게 서늘해 보이는 시선으로 빈청 안의 사람들을 주욱 한번 둘러보았다.

"이렇게 뵙게 되니, 더욱 반갑습니다."

인사를 건네며 웃는 안영군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눈빛에서는 광기가 번득거리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기 충분했다.

"뭐가 좋겠습니까? 폐세자라면 역시... 대역죄가 적당하겠지요."

난데없는 안영군의 말에 다들 기겁을 하며 낯빛이 창백해졌다 .

"대군... 그리 쉽게 이야기하실 것이..."

병판이 만류하려 하자, 돌연 안영군이 버럭 소리 질렀다.

"무엇을 그리 망설이십니까?"

"마, 망설이는 것이 아니오라, 이런 일에는 명분과 증좌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억지를 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병판의 설득에도 안영군은 격앙된 목소리로 그를 보며 일갈하듯 말했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되게 해야지요.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명분과 증좌를 대야지요. 그게!"

다들 놀란 표정으로 안영군을 바라보고 있으니, 안영군이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그게... 권력이란 것이 아닙니까?"

그들은 모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은연중에 유약하다 생각했던 안영군의 패기는, 어느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폐세자를 시키세요. 그 정도는 보여야 할 겁니다. 그런 정도의 능력도 없다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기 힘드실 겝니다."

안영군은 협박에 가까운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빈청을 떠나가 버렸다.



***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는 의금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연희는 아랫입술을 깨물으며 몸을 숨긴 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금 의금부에서는 사교도의 잔당들이 압송되어 와 온갖 문초를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언가 들어볼 수 있을 까 싶어 인근까지 왔으나 괴로워하는 비명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비명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쩐지 가슴이 너무 아프고, 머리 또한 깨질 듯 고통스러웠다.

계속된 울부짖는 비명소리에 연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내 발길을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처소로 돌아가던 연희는 때마침 이곳으로 오고있는 세자와 마주쳤다.

연희가 황급히 예를 갖추어 인사하니, 세자가 다급히 다가오며 말했다.

"대체 어딜 갔던 것이냐?"

"그... 그것이..."

연희가 당황하여 말을 못 하는 사이, 세자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저, 저하..."

놀란 연희가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하자, 잠시 아무말 없이 그녀를 안고만 있던 세자는 서서히 팔을 풀며 연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간다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거라. 걱정되지 않느냐?"

연희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세자를 바라만 보았다.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 버린 기분이었다.

"저하,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연희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에 세자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누가 본들 무슨 상관이냐?"

"언제는 예법을 모른다 타박하시더니..."

"그깟 예법, 나도 잊으련다."

연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가, 이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러면 큰일 나시옵니다. 경을 치시옵니다."

"괜찮다. 내가 이 나라 세자다."

"피~ 뭔지 몰라도, 조금 치사한 것 같습니다."

연희의 투정 어린 말에 세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치사? 내가? 허허, 내가 어찌 치사하다는 것이냐?"

"저하 께옵서는 이 나라의 국본이시지 않습니까? 똑같이 잘못해도, 저는 예법을 몰라 경을 치신다 하시고는... 저하 께옵서는 세자라 괜찮다 하시니, 어쩐지 뭔가 좀 치사한 것 같습니다."

연희의 말에 세자가 껄껄 거리며 웃었다.

"그래? 기왕 그리 된 것이라면, 계속 치사할 것이다. 좀 치사하면 어떠냐? 그래도 내가 세자인데."

세자의 뻔뻔스러운 말에 연희는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연희가 환하게 웃으니, 세자도 덩달아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와중에 아련하게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연희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세자 역시 그 소리를 들었는지, 비명이 들려오는 의금부 방향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네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구나."

연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예. 왠지 그들에게 미안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 구명해 주고 싶습니다."

세자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대역죄를 범한 죄인들이다. 응당 그 죗값을 받아야 할 것이다. 죄인이 그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받지 않는다면, 세상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불쌍합니다. 그저 몰라서, 그냥 시키니까, 혹은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런 것 아닙니까?"

세자가 연희의 양 어깨를 부드럽게 잡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가 있다 하여, 그 죄를 벌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이유 있는 죄인들로 가득할 것이다."

연희는 안타깝지만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이제 그만 돌아가자."

세자가 연희를 데리고 동궁전으로 발걸음을 돌려 걸어가자, 연희가 따라가다 말고 물었다.

"허면... 만약 제가 저들과 같은 처지가 된다면... 저하 께옵서는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그러자 세자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내 너만큼은 국법을 어기는 한이 있어도 지켜주마. 허나, 기왕이면 저들처럼 되기 전에 막아야겠지. 걱정 말거라. 내 너만은 꼭 지켜주마."

연희는 다짐하듯 약속하는 세자를 보며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다시 동궁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정해 보이는 세자와 연희,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내관과 궁녀의 행렬을, 한쪽에서 모습을 숨긴 체 지켜보고 있던 안영군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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