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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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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25
읽기 시간 예측: 약 10.65분

21화 - #21


거대한 두루미 두 마리가 바람을 타고 날고 있었다.

하나의 두루미 등위로 백하와 나래가, 또다른 두루미 등위에는 솔이와 오공이 타고 있고, 아토를 등에 태운 초코 역시 옆에서 함께 날고 있었다.

한 손에 천윤도를 꼭 쥐고 있던 나래는, 천윤도의 빛이 점점 밝아지자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저긴가 봐요."

나래가 가리키는 곳은 어느 이름 모를 산자락에 놓인 허름한 절이었다.

두루미는 이내 절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절 앞에 내려선 다음, 몸을 숙여 모두가 등에서 쉽사리 내려설 수 있도록 도왔다.

"이곳이 맞느냐?"

백하가 물음에 나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기억나지 않아요. 제대로 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분명 천윤도가 여길 가리키고 있어요."

나래의 대답에 백하가 먼저 앞장서서 다가가 허름한 절의 낡은 문을 열었다.

절은 버려진 지 오래되어 보였고, 삐그덕 거리는 나무문 소리와 함께 드러난 실내는 거미줄이 가득하고 어두컴컴했다.

"아..."

나래는 앞에 놓인 불상을 보고는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제가 들어갔던 사찰에서도 저런 모양의 불상이 있었어요, 그리고 뒤에 도깨비 마을 풍경이 그려진 그림이 있었어요."

백하가 안으로 들어가 불상 뒤를 살펴보자, 확실히 그림이 걸려 있었을 법한 흔적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홍저왕이 이곳에서 초공연화를 가져간 모양이구나."

이어 나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구나. 그간 고심이 많았다."

백하의 말에 나래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어쩐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남아있으면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하니, 돌아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돼?"

뒤쪽에 서 있던 오공의 푸념 섞인 목소리에, 나래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언제 없어질 줄 알고?"

"존재감 없기는 거기서도 마찬가지 아냐?"

나래는 오공의 투덜거림에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때 바깥에 있던 두루미 두 마리가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나래가 어리둥절해 하자, 백하가 먼저 밖으로 나왔다.

두루미가 날아간 것은 누군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어?"

아토가 그를 알아보고 놀라는 것도 잠시, 돌연 백하의 몸이 허공 위로 떠올랐다.

"백하도령!"

뒤따라 나오던 나래가 놀라 붙잡을 겨를도 없이, 백하의 몸이 회오리치듯 빙글빙글 맴돌며 나타난 이가 들고 있는 호리병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는 백하가 호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마자 얼른 뚜껑을 닫았고, 섬뜩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히히히... 네놈들이 이곳에 올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홍저왕이었다.

나래의 눈에 홍저왕이 들고 있는 호리병이 보였다.

"뭐하는 짓이야? 어서 백하도령님을 풀어줘!"

나래가 버럭 소리쳐보지만, 홍저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낄낄,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감히 날 속이고 내 보물을 훔쳐가?"

홍저왕의 말에 나래가 맞받아치듯 소리쳤다.

"내기에서 이긴 게 어떻게 속인 거죠? 내기에서 이겨서 초공연화를 받은 거잖아요."

홍저왕이 버럭 소리쳤다.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

"우리가 가진 물건은 써도 된다면서요!"

"도깨비방망이가 있는 줄은 몰랐으니까!"

"애초에 천계 물건을 쓸 수 없다는 사실도 말 안 해줬잖아요. 우릴 속이려고 한건 당신이죠!"

나래가 지지 않고 소리치자, 홍저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이... 이제 필요 없다. 백하도령이 없는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느냐?"

홍저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위에서 수많은 요괴들이 창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요괴들에게 포위된 사실을 알게 되자, 나래와 오공, 솔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놈들을 모조리 붙잡아 데리고 오너라."

홍저왕의 명령에 수하 요괴들이 창을 앞세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 진짜, 이 신의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토는 전혀 걱정되지 않는지, 퉁명스럽게 말하더니 자기 앞발을 들어 혀를 할짝거렸다.

그 바람에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아토 쪽으로 향했고, 아토는 앞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모름지기 요괴란 놈들이 신의가 없어서야 되겠냐?"

"고양이 놈이 말이 많구나."

홍저왕이 피식 웃으며 무시하자, 그 순간 아토의 몸이 엄청나게 커졌다.

어느새 아토의 모습은 완전한 검은 호랑이의 모습으로 바뀌고, 그 덩치가 일반 호랑이보다 서너 배는 훨씬 더 컸다.

아토가 포효하자 다가오던 요괴들이 움찔 놀라며 물러섰다.

재빨리 앞으로 나선 아토는 커다란 앞발로 요괴 몇을 단박에 후려쳤다.

요괴들은 순식간에 나가떨어졌고, 다른 요괴들은 겁에 질려 뒤로 도망치듯이 물러섰다.

"흐...흑산장군이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요괴들은 기겁을 했고, 홍저왕도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흑산장군?"

그 사이 아토가 나래를 보며 말했다.

"올라타거라."

말과 동시에 아토가 앞발로 나래와 오공, 솔이를 들어 등에 태웠고 초코는 나래 품에 안겼다.

모두를 등에 태운 아토는 홍저왕의 반대편으로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노옴!"

홍저왕의 쩌렁쩌렁한 외침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오고, 서슬 퍼런 눈을 부릅뜨며 그들을 뒤쫓았다.

분노한 홍저왕은 흡사 태풍처럼 거대해지며 달려가는 아토를 쫓아왔고,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며 강한 빗줄기를 쏟아부었다.

빗물은 순식간에 강물처럼 불어나, 달리고 있는 아토를 집어삼킬 듯 쫓아왔다.

"더 이상은 무리야..."

아토가 맥이 빠진 듯 말을 하는 순간, 나래의 품에 있던 초코가 뛰쳐 올랐다.

"어?"

나래가 놀라는 것도 잠시, 이번엔 초코가 순식간에 거대한 새로 변했다.

아토가 다시 원래 고양이로 돌아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거대화된 초코의 등 뒤에 올라 태워진 일행은 초코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고, 아토는 초코의 발에 움켜 잡혀 있었다.

홍저왕의 모습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봉황이 되어 날아가는 나래와 일행을 보면서, 놓칠세라 입으로 후 불자 엄청난 광풍이 초코를 덮쳐왔다.

"꺄아악!"

나래와 오공, 솔이는 초코의 깃털을 꼭 부여잡은 체 바람에 날려가는 초코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강력한 광풍에 몸을 가눌 수 없는 초코는 그대로 날아가 바다로 곤두박질쳤다.

초코가 일행과 함께 바닷속으로 풍덩 빠져버리자, 거대화된 홍저왕이 그 수면 위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이내 사라져 버렸다.

***

나래가 간신히 눈을 떴을 때,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퉁 튀어나온 눈, 둥글둥글한 얼굴, 징그럽게 까딱 거리고 있는 비늘까지, 보는 순간 나래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연이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나래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자, 방안의 풍경이 모두 보였다.

방금 전 앞에 있던 요괴는 나래의 비명에 되려 더 놀란 표정으로 물러서 있었고, 일찍 정신을 차린 듯 보이는 오공과 솔이는 마주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다가 놀라 나래 쪽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나래가 당황하여 더듬더듬 묻는 말에, 한쪽에서 아토가 태연히 다가와 나래 앞에 앉았다.

"뭘 그렇게 놀래? 빠가사리 처음 봐?"

아토의 말에 나래는 여전히 부릅뜬 눈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빠, 빠가사리요?"

"그래. 빠가사리."

이어 아토가 그 요괴를 돌아보며 지청구를 했다.

"이놈아, 못생긴 얼굴 들이미니까, 나래가 놀라잖아."

아토의 핀잔에 빠가사리는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이구, 죄송해유, 그리 놀랄 줄 몰랐슈."

빠가사리의 말에 나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토를 보고 물었다.

"여긴 어디예요?"

"어디긴? 용궁이지."

나래는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요, 용궁이요?"

"그래. 바닷속에서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거 보면 몰라? 여긴 용궁이야."

나래는 마지막에 강풍에 휩쓸려 바다에 빠졌던 일을 떠올렸다.

"백하도령님은요? 백하도령님은 어떻게 되신 거죠?"

나래가 걱정되어 묻자, 아토 옆으로 초코가 다가오며 말했다.

"봉인됐다."

"봉인요?"

이번엔 아토가 나서 대답했다.

"그놈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는데, 백하도령을 빨아들인 그 물건은 분명 총명 부인의 호리병일 게야."

"총명 부인의 호리병이요?"

"그래. 가지고 있는 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빨아들이지. 설령 산이라도 빨아들일 수 있어."

나래는 정확하게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얼른 다시 물었다.

"그래서, 백하도령님은 괜찮으신 건가요? 다시 나올 수 있는 건가요?"

"그래. 호리병을 들고 뚜껑을 열면 다시 나올 거야.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 담으니까."

나래는 백하도령이 무사하다는 말에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얼른 꺼내드리죠. 저한테 도깨비방망이가 있잖아요."

나래가 도깨비방망이를 꺼내들자, 아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힘이 깃든 신계의 물건을 도깨비 방망이로는 불러낼 수 없어. 그랬다가는 천계가 발칵 뒤집히게?"

나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망이로 바닥을 내리치며 외쳤다.

"호리병 나와라, 뚝딱!"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짜네...."

나래가 실망하자, 아토가 다시 말했다.

"어떻게든 그 호리병을 빼앗아서 백하도령을 꺼내 줘야 해. 문제는... 그걸 가진 자가 홍저왕이란 거지."

나래는 아토를 보며 물었다.

"놀랐어요. 그렇게 큰 호랑이가 되실 줄은.... 아토님이 홍저왕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는 건가요?

아토가 콧방귀를 뀌었다.

"
내가 소싯적에는 홍저왕 따위 무섭지 않았지만 말이야... 지금은 내가 은퇴해서 태평하게 산지가 좀 오래 되가지고..."

아토는 변명을 늘어놓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초코와 눈이 마주쳤다.

"
왜? 뭐? 할 말 있어?"

초코는 아무런 말도 없이 콧방귀를 뀌었고, 이를 본 아토가 발끈했다.

"
말을 해. 말을. 뭐가 불만이야? 내가 홍저왕을 못 이겼을 거 같아?"

"
홍저왕이 아프면? 되게 많이..."

"
이 닭대가리를 진짜..."

나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있다가 둘을 말렸다.

"
어쨌든... 어떻게든, 백하도령님을 구해야죠.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
글세.... 일단 이곳을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아토의 말에 나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예? 왜요? 그냥 못 나가요?"

아토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나래를 바라보며 물었다.

"
넌 용궁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
어떤... 곳이라뇨? 글세요..."

"
이곳의 용왕이 우리를 구했다 생각할 것이니 필경 뭔가를 요구할 것이다. 그게 뭐냐에 따라 우리가 나갈 수 있고 없고 가 정해지겠지."

아토의 말에 나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뻘쭘하게 서 있는 빠가사리를 바라보자, 빠가사리가 씨익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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