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TokTok v0.1 beta
챕터 배너

나린왕국

author
· 오기연랑
· 최초 등록: 2025.10.04 · 최근 연재: 2025-10-25
읽기 시간 예측: 약 10.52분

38화 - #7


아직 해가 들지 않은 새벽시간, 나래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이쪽으로 오거라."

개의 모습이 반쯤 섞여 있는 아주머니의 부름에, 나래는 졸린 눈을 껌뻑 거리며 총총히 달려갔다.

"너는 저쪽에서 상을 가져오거라."

아주머니는 한쪽에 겹겹이 쌓여 있는 둥근 상을 가리켰고, 나래는 그쪽으로 가서 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상을 바로 하여 아주머니가 있는 쪽에 놓으니, 아주머니가 행주를 하나 상위에 놓아주며 지시했다.

"상을 닦거라."

나래가 물 묻은 행주로 상의 먼지를 닦아내자, 아주머니는 그 위에 밥그릇과 국그릇을 네 개씩 올려놓았다.

밥과 국에서는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국에는 무와 고깃거리가 군침 나게 올려져 있었다.

이어 두서너 가지 찬거리를 상 중앙에 놓고는 나래를 보며 말했다.

"이것을 가지고 따라오너라."

아주머니가 먼저 나가자, 나래는 상을 들고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밥과 국이 놓인 상은 무겁긴 했지만 들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나래의 코끝을 자극하는 국의 짠내가 식욕을 자극해서 참기 힘들었다.

"여기 이 줄이 보이느냐?"

아주머니는 광장 한쪽에 서서 발끝으로 땅바닥을 톡톡 치며 나래를 보며 물었다.

나래가 다가가 보니, 바닥에 얇고 질긴 붉은 줄이 모레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네."

"이 줄에 상끝을 맞추어 놓거라."

나래가 상을 내려놓은 뒤 줄에 맞춰 상을 놓자,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놓으면 된다. 나머지 상들도 그렇게 놓거라. 상과 상의 거리는 상 2개를 놓을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

"예."

아주머니는 다시 조찬소로 들어갔고, 나래가 뒤따라 들어가서 이번에도 쌓여있는 상중에 하나를 꺼내 들어 아주머니 앞쪽에 놓은 뒤 행주로 닦아 냈다.

아주머니는 상이 놓이자마자 밥과 국, 반찬들을 올려놓았고, 나래는 다 올려진 상을 들어 먼저 가져다 놓은 상 옆으로 줄에 맞춰 놓았다.

그러기를 수십 번, 넓은 광장이 상으로 가득 찰 무렵,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고, 광장으로 모여드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사람 같은 복색을 하고 있었으나, 대부분이 개나 고양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간간히 뱀이나 돼지, 여우 같은 동물들도 섞여 있었다.

복색도 각양각색이었다. 조선시대에나 어울릴법한 한복을 입은 이가 있는가 하면, 유럽풍의 옷을 입은 이도 있었으니, 근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복색들이 눈길을 끌었다.

나래는 이마에 땀을 훔치며, 모여드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도 이쪽으로 와서 식사하거라."

아주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 돌려보니, 상 위에 두 개의 밥과 국이 놓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래가 얼른 달려가 아주머니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아 국부터 한수저 떠넘기는데, 구수한 향이 더해진 감칠맛이 입안에 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맛있어요."

나래가 신이 나서 한술 두 술 더 떠먹으니,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천히 먹거라.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나면, 치우는 것이 일이다."

나래는 밥을 한술 떠먹으며 물었다.

"그런데 모두가 다 이곳에서 식사하는 건가요?"

아주머니 역시 식사를 하며 대답했다.

"그래. 이곳은 궁궐에서 일하는 이들이 아침식사를 하는 곳이지. 모두가 하는 것은 아니고, 대게 품계가 낮은 이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한단다."

"품계요? 품계도 있어요?"

"그럼. 이곳도 엄연히 궁궐인데, 당연히 품계가 있지."

나래는 놀랍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고, 아주머니는 그런 나래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말을 이었다.

"사람이라고?"

나래는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왕님을 제외하고 사람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구나."

아주머니의 웃음이 어딘지 서글퍼 보인 나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주머니는... 어떻게 오신 건가요?"

"나?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이미 알고 있지 않니?"

"아... 물론 그렇죠."

"내 주인은... 나이 든 할아버지였단다."

나래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시골집에서 살았었지. 할아버지와 함께 라면, 다른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다. 비록 먹는 것이 부족하여 굶을 때가 많긴 했어도..."

아주머니는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듯 상념에 잠긴 얼굴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날 돌볼 수 없게 되었지."

나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버린 게 아니잖아요."

잠시 말이 없던 아주머니는 나지막하게 이어 말했다.

"몸이 아픈 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아들이 찾아왔었지. 집이고 땅이고 처분한다고, 할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갔고, 목줄에 묶인 체 나 홀로 남겨졌단다."

"왜...."

"요양원에는 개가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그 아들은 나같이 다 큰 개를 원하지 않았어."

나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그녀가 겪었을 참혹한 시간을 생각하니,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우린... 이곳에 모여 각자의 주인을 그리워하며 살거나, 혹은 증오하며 살고 있단다. 그래서, 그들의 행색을 보면... 그 주인, 혹은 주인의 가족 모습이 깃들어 있지."

나래가 아주머니의 행색을 살펴보니, 시골 마을 할머니들에게서나 볼법한 복색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만 해도... 그리 굶진 않았었지. 이곳에 와서, 나는 다른 이들의 식사를 챙기고 싶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끼니도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그저 짖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원망했었거든. 누군가의 끼니를 챙겨주는 것이... 내겐 위로가 되어 주더구나."

나래는 그녀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할머니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래의 시선은 다시 바깥으로 향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는 이들의 다양한 복색들이, 자신들을 키우던 주인 혹은 주인의 가족이 하고 있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친분 쌓는 걸 금지시킨 거죠?"

나래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말없이 식사를 이어나가다가, 나래가 한수저를 더 입에 넣고 나서야 대답했다.

"그리움이 되었든, 증오가 되었든, 우리 모두는 옛 주인을 만나고 싶어 하지."

"왜요?"

아주머니의 시선이 나래의 눈과 마주쳤다.

"우린... 우리의 옛 주인이 우리를 버린 순간보다, 우리를 가족으로 맞이하던 순간을... 더 강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지."

아주머니의 그 말에, 나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래와 아주머니의 상을 치울 무렵에 바깥쪽에선 대부분 식사를 마치고 떠난 뒤였다.

나래는 서둘러 빈상들을 챙겨 조찬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고, 아주머니는 한쪽에 그릇들을 차곡차곡 쌓은 뒤에 상을 내놓았다.

그러면 나래는 상을 닦은 뒤 원래 쌓여있던 곳에다가 가져다 놓고, 다시 나가서 다른 빈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을 일하고 나니, 해는 이미 중천에 더 있었고, 설거지까지 모두 마치고 난 뒤에서야 쉴 수 있었다.

나래는 한숨을 돌리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훔쳤고, 아주머니는 향긋한 차 한잔을 내어주었다.

"수고했다. 이것을 받거라."

조선시대에 통용되던 상평통보처럼 생긴 동전을 보며 신기해 하자, 아주머니가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이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째서요?"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여왕의 수하들이 너를 잡으러 올 것이다. 이것은 오늘 하루가 지나면 절로 사라질 것이니, 이것을 지니지 않은 자는 모두 여왕의 수하들에게 잡히게 된다."

나래는 이해했다는 듯 "아~"소리를 내며 아주머니가 내어주는 동전을 받아 들었다.

"일하지 않으면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건 그런 의미였군요."

나래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웃는 얼굴로 답해 주었다.

"그래.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된다."

"그럼... 소가 된 아이들을 찾고 싶은데... 그 아이들은 어디 있을까요?"

"소가 된 도깨비 아이들을 찾고 싶은 거라면, 궁궐 뒤편에 있는 외양간으로 가보거라. 그곳을 지키는 산돌아범을 보거들랑, 조찬소의 장미가 보내서 왔다고 하거라."

"장미요? 아주머니 이름이 장미예요?"

장미 아주머니는 보드라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아직 새끼일 때, 할아버지가 장미처럼 이쁘다고 지어주셨지."

"네. 감사합니다."

나래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아주머니가 알려준 궁궐 뒤편 쪽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아직 해가 중천이지만 알아봐야 할 것이 많았기에 서둘렀다.

궁궐 뒤편에 다다르자, 나래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외양간이 시골에서 볼법한 그런 외양간이 아니라,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안에 있는 소 무리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와..."

나래는 절로 입이 쩍 벌어졌고, 멍하니 소들을 보고 서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네었다.

"넌 뭐 하는 거냐?"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오는 이를 돌아보니, 개 얼굴이 반쯤 섞인 아저씨가 눈을 가늘게 뜨고 다가왔다.

"아... 장미 아주머니가 보내서 왔어요."

장미란 이름을 듣자마자, 아저씨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대답했다.

"아, 그래? 무슨 일로?"

"어제 소가 돼서 이곳에 온 아이들이 있어요. 찾을 수 있을까요?"

나래의 물음에 산돌아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택도 없는 소리. 저 많은 소들 중에 어떤 놈이 어제 새로 들어온 놈인지 아무도 몰라. 어떻게 알겠어?"

산돌아범의 대답에 나래는 시무룩해졌다.

"아... 그럼 안되는데..."

그랬다가 문득 홍저왕과의 내기 시합이 떠오른 나래는 허리춤에서 도깨비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좋아. 한번 해보자."

나래는 왠지 흥분되는 기분을 느끼며 도깨비방망이로 바닥을 내리쳤다.

"한울 나와라 뚝딱!"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소 한 마리 나래 눈앞에 옮겨졌다.

"움머~~~"

소가 울자, 나래가 환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된다!"

그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산돌아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너 뭘 어떻게 한 거야?"

나래는 이어서 소를 도깨비방망이로 툭 치며 외쳤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라, 뚝딱!"

그러자, 다시 '펑'하는 소리와 함께 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한울이 서 있었다.

"됐다!"

기뻐하는 나래를 보며 한울도 기뻐서 양팔을 들고 외쳤다.

"나래 만세!"

둘이 기뻐하며 서로를 부둥켜안는 사이, 산돌아범은 그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조회: 16
댓글
0

아직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저작권 보호: 무단전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