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16
길을 걷고 있던 나래는 고개를 돌려 원래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오공을 보았다.
아니 이제는 그녀를 오공이라고 불러야 할지, 나래라고 불러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시무룩한 그녀의 얼굴에 나래가 물었다.
"어디 불편해?"
어른의 모습을 한 나래는 아이의 모습을 한 나래를 힐끔 보고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난 그냥 여기서 기다리면 안 될까? 난 따라가 봐야 도움이 안 될 텐데..."
그 말을 들은 나래는 가슴속이 복잡 미묘하고, 속이 쓰라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습관 같은 말이었다.
그저 오늘 하루도, 아무 탈 없이, 있는 듯 없는 듯이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날이 가장 좋은 날이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욕도, 무엇을 이루겠다는 소망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것 따위를 가질 만큼 녹록한 삶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지금 자기 앞에서 똑같은 말을 되뇌는 어른 나래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그저 무기력하기만 한, 어른 나래를 보면서, 나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나래야."
갑자기 아토가 부르는 말에, 나래와 어른 나래가 동시에 아토를 바라보았다.
"이래서야 되겠어? 둘을 다르게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나래가 진중한 표정이 되어 어른 나래를 보며 말했다.
"너는 오공이야. 누가 뭐라 해도 오공이야. 그러니까, 널 오공이라고 부를 거야."
어른 나래, 아니 오공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술을 씰룩거렸다.
"난 오공 싫은데..."
원래 자신의 모습과 똑같으면서도, 이런 부분은 또 달랐다.
나래는 그러한 마음이 있어도 그걸 겉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겉모습이 아닌, 진짜 속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 더 혼란스러웠다.
"꼬?"
초코가 오공의 곁으로 다가서자, 오공이 흠칫 놀라며 나래 곁으로 물러섰다.
"무서워..."
의식은 달라졌어도, 초코를 무서워하는 본능은 남아있는 듯했다.
그런 오공을 바라보고 있는 나래를, 백하가 걱정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홍저왕은 자칭 요괴들의 왕이니 오공이 어찌 저러는 것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홍저왕이 모른다면, 내 총명 부인이나 금왕 전하께 여쭈어서라도 해결할 것이니, 염려치 말거라."
백하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래는 용기를 얻은 듯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행은 다시 백하를 따라 봉오산 지릅고개길을 지나기 시작했다.
하늘 위로 무언가 큼지막한 것이 날아다니는 듯, 작지 않은 그림자가 너울거리며 까마귀 울음소리를 냈다.
나래가 고개를 들어보니, 도저히 까마귀라고 생각할 수 없는 커다란 것이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죠?"
나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두려움에 덜컥 겁이 났다.
"저것들은 흑비천상이란 것들이다."
백하의 대답에 아토가 살을 덧붙였다.
"원래 비천상이라고 해서, 천계를 수호하는 병사들이었는데, 변절하여 요괴의 편에 선 것들이야. 원래는 사나래를 달고 있지만, 변절하여 까마귀 날개로 바뀌고, 까마귀 부리가 생긴 것이지."
백하가 나래를 보며 염려하지 말라는 듯이 얘기했다.
"걱정 말거라. 하늘을 날아오르지 않는 한 저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나래는 백하의 온화한 미소를 보면서, 자신 역시 대답 대신 살짝 웃음 지어 보였다.
봉오산의 지릅고개길은 어느덧 산의 정상에 다다르고 있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가슴을 한결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풍경이었지만, 지척 거리에 또 다른 큰 산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 놓은 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묘한 절경이었다.
마치 각기 다른 두 개의 산을 의도적으로 가져다 놓은 것처럼 가까이 있었는데, 푸른 초록의 봉오산과는 대조적으로 짙은 회색빛과 푸른빛이 감도는 천태산의 모습은 음울하고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저것이 천태산이다. 요괴들의 거처라 하여 요수산(妖獸山)이라고도 한다."
봉우리가 둥그스름한 일반적인 산들과 다르게, 천태산은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 즐비하고 산 끝이 하나같이 뾰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른 곳의 구름은 하나같이 하얗고 맑았건만, 천태산 꼭대기에 머무는 구름만은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솔이가 뒤에서 한걸음 나서 천태산 아래쪽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해지개 마을이어요. 여서는 보이지 않지만, 조금 내려가면 보일 겁니다."
솔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백하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나래를 비롯한 일행이 모두 그 뒤를 따랐다.
나래는 내려가면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솔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솔아... 너를 만났을 때, 아저씨는 내게, 요괴나 도깨비들이 내가 사람인 걸 알면 위험하다 하셨는데, 이제는 또 도깨비들이 사람을 좋아한다니, 그럼 그 아저씨가 잘못 알고 계신 거니?"
나래의 물음에, 솔이가 활짝 웃어 보였다.
"아녀요. 요괴들은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고, 때때로 잡아먹기도 하는데,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몰라 그것이 위험한 것이옵고, 도깨비들은 너무 좋아해서 탈이어요."
"너무 좋아해서?"
"예, 아씨. 적당히 좋아하면 나쁠 것이 없지만, 과도하게 좋아하면 그것이 종종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솔이의 대답에 나래는 굳이 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뭐... 나도 도깨비들이 싫지 않네? 그럼 됐지 뭐."
나래가 솔이를 보며 씨익 웃어 보이자, 솔이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야 감사하지만, 아씨... 모든 도깨비들이 까미나 수피아 같지는 않습니다."
종종이 따라오며 듣고만 있던 오공이 불쑥 나서 물었다.
"괴물같이 생긴 도깨비도 있어? 막 우락부락하게 생긴 도깨비들?"
솔이가 오공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요. 무섭게 생긴 도깨비도 엄청 많이 있어요."
솔이의 대답에 오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으... 난 싫어. 그냥 돌아가면 안 될까?"
나래가 그런 오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문득 나래는 자신이 '우리'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 묘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왜? 가면 뭐해? 누가 반겨준다고?"
오공의 대답에 나래는 또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여기 살아? 여기서 뭐 하고 살 건데? 할 줄 아는 거나 있어? 여긴 사람 사는 곳이 아냐."
오공이 지지 않고 대답했다.
"여긴 솔이도 있고, 백하도령님도 있잖아. 돌아가면 누가 있는데? 누가 기다려? 누가 날 좋아해 준대? 또 그 지긋지긋한 회사에 출근해서, 꼰대 같은 사장 커피나 타 줘야 되잖아?"
나래는 오공의 말에 반박을 하려 했지만, 입만 우물거릴 뿐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래가 뭐라 말을 하려다가 말끝을 흐리자, 오공이 다시 이어 말했다.
"맨날 하소연하는 엄마 푸념도 이제 듣기 싫어. 듣고 있으면 나도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야. 돌아가서 솔이 마을에서 살자. 백하도령님이 도와주시겠지. 도깨비들은 사람 좋아한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단지 사람이라서 날 좋아해 준다잖아. 난 그것만으로도 좋아."
도리어 오공의 설득에, 나래가 흔들려 버릴 것만 같았다.
'난 왜 돌아가려 하는 걸까?'
나래의 마음속에 그러한 의구심이 솟구쳐 올라와 버렸다.
"안돼요, 아씨. 돌아가셔야 해요."
솔이가 걱정스레 나래를 보며 말을 하니, 나래는 도리어 솔이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왜?"
앞장서 걷던 백하가 발걸음을 멈춰, 나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네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되면, 네 존재는 원래 있던 세계에서도, 또한 이 세계에서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나래가 백하도령을,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존재할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죽는다는 말인가요?"
"아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게 되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너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래는 놀라서 멍한 표정으로 백하를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그런 말 한적 없었잖아요? 왜 이제 와서?"
"그것은 네가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너를 돌려보내 주기만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생각해서였다. 돌아갈 거라면, 굳이 그러한 내용을 알 필요가 없겠지. 허나, 이제는 알아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잠시 망설이던 나래가 이어 물었다.
"얼마나... 시간이 있는 거죠?"
"이곳은 너에게 있어 시간이 멈춘 세상과도 같다. 누군가의 지나간 삶의 흔적, 그리고 누군가의 잊힌 기억들이 모여 만들어진 세상이다. 너에게 있어, 지나온 길이며, 눈 위에 새겨진 발자국과 같은 세상이다. 원래 세계의 네가 있기에, 또한 네가 이곳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네 존재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 또한 다를 것이다. 얼마나 남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나래의 표정이 씁쓸해졌고, 그녀가 할 말을 오공이 대신했다.
"누가 날 기억하겠어? 돈 빌려달라는 엄마나 기억하겠지. 모르지. 개떡 같은 사장이 커피 타 줄 사람 없어서 기억할지도."
옆에서 듣고 있던 아토가 물었다.
"커피가 뭐야?"
오공이 그런 아토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있어, 쓴맛 나는 차야."
"쓴맛? 그딴 걸 왜 먹어?"
"난 달달한 거 좋아했어. 이것저것 넣으면 달달 해지거든. 우유도 넣고, 초코도 넣고."
그 말을 들은 초코가 "나?"하고 묻자, 오공이 흠칫 놀라며 나래 뒤로 숨었다.
아토가 그런 초코를 보며 말했다.
"쟤네 누리에서는 커피라는 차에 닭을 고아 넣는 모양이지. 달달하다는데? 차랑 고기랑 같이 먹는다니... 이상하게 먹네? 닭고기는 역시 술이랑 먹어야지."
초코가 고개를 까딱 거리며 아토에게 말했다.
"돼지 같은 고양이보다는 쓸모가 있지."
둘의 대화를 들으며, 백하가 방긋이 웃더니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행 모두 백하의 뒤를 따라 걸었고, 뒤따라 걷는 나래는 심경이 복잡해졌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니...
누가 있어 자신을 기억해줄까? 몇 사람이나 기억을 해줄까? 이 세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순식간에 점령해 버려서, 다른 생각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아니 이제는 그녀를 오공이라고 불러야 할지, 나래라고 불러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시무룩한 그녀의 얼굴에 나래가 물었다.
"어디 불편해?"
어른의 모습을 한 나래는 아이의 모습을 한 나래를 힐끔 보고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난 그냥 여기서 기다리면 안 될까? 난 따라가 봐야 도움이 안 될 텐데..."
그 말을 들은 나래는 가슴속이 복잡 미묘하고, 속이 쓰라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습관 같은 말이었다.
그저 오늘 하루도, 아무 탈 없이, 있는 듯 없는 듯이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날이 가장 좋은 날이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욕도, 무엇을 이루겠다는 소망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것 따위를 가질 만큼 녹록한 삶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지금 자기 앞에서 똑같은 말을 되뇌는 어른 나래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그저 무기력하기만 한, 어른 나래를 보면서, 나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나래야."
갑자기 아토가 부르는 말에, 나래와 어른 나래가 동시에 아토를 바라보았다.
"이래서야 되겠어? 둘을 다르게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나래가 진중한 표정이 되어 어른 나래를 보며 말했다.
"너는 오공이야. 누가 뭐라 해도 오공이야. 그러니까, 널 오공이라고 부를 거야."
어른 나래, 아니 오공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술을 씰룩거렸다.
"난 오공 싫은데..."
원래 자신의 모습과 똑같으면서도, 이런 부분은 또 달랐다.
나래는 그러한 마음이 있어도 그걸 겉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겉모습이 아닌, 진짜 속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 더 혼란스러웠다.
"꼬?"
초코가 오공의 곁으로 다가서자, 오공이 흠칫 놀라며 나래 곁으로 물러섰다.
"무서워..."
의식은 달라졌어도, 초코를 무서워하는 본능은 남아있는 듯했다.
그런 오공을 바라보고 있는 나래를, 백하가 걱정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홍저왕은 자칭 요괴들의 왕이니 오공이 어찌 저러는 것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홍저왕이 모른다면, 내 총명 부인이나 금왕 전하께 여쭈어서라도 해결할 것이니, 염려치 말거라."
백하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래는 용기를 얻은 듯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행은 다시 백하를 따라 봉오산 지릅고개길을 지나기 시작했다.
하늘 위로 무언가 큼지막한 것이 날아다니는 듯, 작지 않은 그림자가 너울거리며 까마귀 울음소리를 냈다.
나래가 고개를 들어보니, 도저히 까마귀라고 생각할 수 없는 커다란 것이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죠?"
나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두려움에 덜컥 겁이 났다.
"저것들은 흑비천상이란 것들이다."
백하의 대답에 아토가 살을 덧붙였다.
"원래 비천상이라고 해서, 천계를 수호하는 병사들이었는데, 변절하여 요괴의 편에 선 것들이야. 원래는 사나래를 달고 있지만, 변절하여 까마귀 날개로 바뀌고, 까마귀 부리가 생긴 것이지."
백하가 나래를 보며 염려하지 말라는 듯이 얘기했다.
"걱정 말거라. 하늘을 날아오르지 않는 한 저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나래는 백하의 온화한 미소를 보면서, 자신 역시 대답 대신 살짝 웃음 지어 보였다.
봉오산의 지릅고개길은 어느덧 산의 정상에 다다르고 있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가슴을 한결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풍경이었지만, 지척 거리에 또 다른 큰 산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 놓은 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묘한 절경이었다.
마치 각기 다른 두 개의 산을 의도적으로 가져다 놓은 것처럼 가까이 있었는데, 푸른 초록의 봉오산과는 대조적으로 짙은 회색빛과 푸른빛이 감도는 천태산의 모습은 음울하고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저것이 천태산이다. 요괴들의 거처라 하여 요수산(妖獸山)이라고도 한다."
봉우리가 둥그스름한 일반적인 산들과 다르게, 천태산은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 즐비하고 산 끝이 하나같이 뾰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른 곳의 구름은 하나같이 하얗고 맑았건만, 천태산 꼭대기에 머무는 구름만은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솔이가 뒤에서 한걸음 나서 천태산 아래쪽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해지개 마을이어요. 여서는 보이지 않지만, 조금 내려가면 보일 겁니다."
솔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백하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나래를 비롯한 일행이 모두 그 뒤를 따랐다.
나래는 내려가면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솔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솔아... 너를 만났을 때, 아저씨는 내게, 요괴나 도깨비들이 내가 사람인 걸 알면 위험하다 하셨는데, 이제는 또 도깨비들이 사람을 좋아한다니, 그럼 그 아저씨가 잘못 알고 계신 거니?"
나래의 물음에, 솔이가 활짝 웃어 보였다.
"아녀요. 요괴들은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고, 때때로 잡아먹기도 하는데,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몰라 그것이 위험한 것이옵고, 도깨비들은 너무 좋아해서 탈이어요."
"너무 좋아해서?"
"예, 아씨. 적당히 좋아하면 나쁠 것이 없지만, 과도하게 좋아하면 그것이 종종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솔이의 대답에 나래는 굳이 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뭐... 나도 도깨비들이 싫지 않네? 그럼 됐지 뭐."
나래가 솔이를 보며 씨익 웃어 보이자, 솔이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야 감사하지만, 아씨... 모든 도깨비들이 까미나 수피아 같지는 않습니다."
종종이 따라오며 듣고만 있던 오공이 불쑥 나서 물었다.
"괴물같이 생긴 도깨비도 있어? 막 우락부락하게 생긴 도깨비들?"
솔이가 오공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요. 무섭게 생긴 도깨비도 엄청 많이 있어요."
솔이의 대답에 오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으... 난 싫어. 그냥 돌아가면 안 될까?"
나래가 그런 오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문득 나래는 자신이 '우리'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 묘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왜? 가면 뭐해? 누가 반겨준다고?"
오공의 대답에 나래는 또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여기 살아? 여기서 뭐 하고 살 건데? 할 줄 아는 거나 있어? 여긴 사람 사는 곳이 아냐."
오공이 지지 않고 대답했다.
"여긴 솔이도 있고, 백하도령님도 있잖아. 돌아가면 누가 있는데? 누가 기다려? 누가 날 좋아해 준대? 또 그 지긋지긋한 회사에 출근해서, 꼰대 같은 사장 커피나 타 줘야 되잖아?"
나래는 오공의 말에 반박을 하려 했지만, 입만 우물거릴 뿐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래가 뭐라 말을 하려다가 말끝을 흐리자, 오공이 다시 이어 말했다.
"맨날 하소연하는 엄마 푸념도 이제 듣기 싫어. 듣고 있으면 나도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야. 돌아가서 솔이 마을에서 살자. 백하도령님이 도와주시겠지. 도깨비들은 사람 좋아한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단지 사람이라서 날 좋아해 준다잖아. 난 그것만으로도 좋아."
도리어 오공의 설득에, 나래가 흔들려 버릴 것만 같았다.
'난 왜 돌아가려 하는 걸까?'
나래의 마음속에 그러한 의구심이 솟구쳐 올라와 버렸다.
"안돼요, 아씨. 돌아가셔야 해요."
솔이가 걱정스레 나래를 보며 말을 하니, 나래는 도리어 솔이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왜?"
앞장서 걷던 백하가 발걸음을 멈춰, 나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네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되면, 네 존재는 원래 있던 세계에서도, 또한 이 세계에서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나래가 백하도령을,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존재할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죽는다는 말인가요?"
"아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게 되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너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래는 놀라서 멍한 표정으로 백하를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그런 말 한적 없었잖아요? 왜 이제 와서?"
"그것은 네가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너를 돌려보내 주기만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생각해서였다. 돌아갈 거라면, 굳이 그러한 내용을 알 필요가 없겠지. 허나, 이제는 알아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잠시 망설이던 나래가 이어 물었다.
"얼마나... 시간이 있는 거죠?"
"이곳은 너에게 있어 시간이 멈춘 세상과도 같다. 누군가의 지나간 삶의 흔적, 그리고 누군가의 잊힌 기억들이 모여 만들어진 세상이다. 너에게 있어, 지나온 길이며, 눈 위에 새겨진 발자국과 같은 세상이다. 원래 세계의 네가 있기에, 또한 네가 이곳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네 존재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 또한 다를 것이다. 얼마나 남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나래의 표정이 씁쓸해졌고, 그녀가 할 말을 오공이 대신했다.
"누가 날 기억하겠어? 돈 빌려달라는 엄마나 기억하겠지. 모르지. 개떡 같은 사장이 커피 타 줄 사람 없어서 기억할지도."
옆에서 듣고 있던 아토가 물었다.
"커피가 뭐야?"
오공이 그런 아토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있어, 쓴맛 나는 차야."
"쓴맛? 그딴 걸 왜 먹어?"
"난 달달한 거 좋아했어. 이것저것 넣으면 달달 해지거든. 우유도 넣고, 초코도 넣고."
그 말을 들은 초코가 "나?"하고 묻자, 오공이 흠칫 놀라며 나래 뒤로 숨었다.
아토가 그런 초코를 보며 말했다.
"쟤네 누리에서는 커피라는 차에 닭을 고아 넣는 모양이지. 달달하다는데? 차랑 고기랑 같이 먹는다니... 이상하게 먹네? 닭고기는 역시 술이랑 먹어야지."
초코가 고개를 까딱 거리며 아토에게 말했다.
"돼지 같은 고양이보다는 쓸모가 있지."
둘의 대화를 들으며, 백하가 방긋이 웃더니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행 모두 백하의 뒤를 따라 걸었고, 뒤따라 걷는 나래는 심경이 복잡해졌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니...
누가 있어 자신을 기억해줄까? 몇 사람이나 기억을 해줄까? 이 세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순식간에 점령해 버려서, 다른 생각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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